[한경에세이] 초롱이와 민삼이

입력 2024-01-04 18:52   수정 2024-01-05 00:00

그날은 오전에 다른 회의가 있어서 좀 느긋하게 숙소를 나섰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 골목길을 지나는데 길모퉁이 카페 앞에 익숙한 자태의 시추 강아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가 보다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그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만약 산책을 나온 것이라면 목줄을 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목줄이 없는 게 의아했다. 차를 돌려 다시 그 장소로 갔다. 혹여나 차에 타지 않거나 냉큼 도망갈 줄 알았는데 녀석은 순순히 내 차에 타 자리에 앉았다. 마치 자기가 늘 타던 차인 것마냥.

녀석을 처음 만난 곳으로 가 주변에 그 녀석을 아는지 다 묻고 다녔다. 모두가 모른다고 해 일단 가까운 동물병원을 검색해 찾아가는 길, 그 녀석은 얌전하게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잠깐씩 물어보느라 운전석에서 내릴라치면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부리나케 넘어왔다. 마치 오랫동안 내 차 옆자리에 앉았던 나의 초롱이처럼. 가까운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녀석의 몸속에 다행히 칩이 있었고 더 기막힌 건 그곳이 그 녀석이 다니는 동물병원이라는 점이었다. 보호자와 연락이 됐고 점심시간에 데리러 오겠다는 얘기를 들은 뒤 나는 안심하고 동물병원을 나왔다.

그 녀석의 이름은 ‘민삼이’였다. 민삼이와 만난 순간부터 30~40분 함께하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가 녀석을 잃어버린 것이라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혹시라도 버린 것이라면 녀석은 또 얼마나 슬플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2년 전 내 곁을 떠나간 초롱이가 이렇게 다시 나에게 온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데려가서 키워야 하나?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혼자 두고 어떻게 출근하나? 등등. 짧은 시간에 든 그 생각들을 다 털어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이쁜 녀석과 헤어지는 게 너무 섭섭했다.

13년간 나와 함께한 시추 초롱이는 45일째 되는 날, 800g의 작은 몸집으로 나와 인연이 돼 6㎏ 넘는 묵직한 몸으로 내 옆구리에 찰싹 붙어서 내 삶에 큰 위로가 돼 준 녀석이다. 마치 진짜 사람인 양 대화가 됐고 모든 교감을 나눌 수 있던 초롱이는 오랜 병마와 싸우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런 초롱이를 잠시나마 다시 만난 듯 민삼이를 만나 안고 있던 시간은 참 행복했다. 마침 그날은 7월의 어느 날로 오후엔 서울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났던 날이다. 그날 아침, 내가 민삼이를 그냥 지나쳤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도 길을 지나다가 홀로 길을 가는 강아지를 종종 본다. 도로 곳곳에 붙어있는 누구를 애타게 찾는다는 현수막. 그 현수막의 주인공과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민삼이와의 사건 이후 주변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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